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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속죄소(출애굽기 25:16-22)
사람들은 죄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신앙의 출발을 죄로부터 하지 않고 가는 것을 봅니다. 죄를 이해하고, 그 심각성이나 그 무서움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신앙의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문제의 심각성을 신앙의 뿌리로, 기초로 갖고 있지 않으므로 안하여 성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고, 더 성숙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신자는 윤리적, 도덕적 차원에서 볼 때 죄를 안 짓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고 또 그런 행동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건 성경이 말하는 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신자들이 그럽니다. 자신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에게도 성경이 말하는 죄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그들과 똑같은 생각이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로마서14:23절을 보면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그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나 다 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르고 했다고 말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몰랐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자신이 노력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범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죄라는 뿌리에서부터 나온 열매라고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들이 크냐 작으냐에 상관없이 다 죄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조그마한 죄일지라도 그 근본인 죄의 뿌리는 아주 깊고 큰 것입니다. 다만 조그만 열매로 나타나고, 싹이 난 상태로만 타나나고 있을 뿐이지 그 근본인 뿌리는 엄청나다는 겁니다.
내가 한 실수가 적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미치지 않았다고 간과해 버립니다. 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크거나 작거나에 상관없이 죄를 짓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늘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심각한 죄로 오염된 사회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이 ‘환경에 관한 문제다’ ‘교육에 관한 문제다’ ‘심리학적인 문제다’라고 나름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뿌리로부터 기인한 부산물들만을 볼 뿐이며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 결과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늘 망각합니다. 내가 죄를 열매 맺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며 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죄’에 대하여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늘 우리 속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5:19절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우리 안에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고, 늘 본능적으로 튀어 나오는 죄에 대한 생각들이 있는 한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열매 맺지 않는다고 죄인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를 열매 맺지 않기 위하여, 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기 위하여 금욕적인 생활을 하거나 수도원에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한다고 해서 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이 성령님께 사로잡힌바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냐의 문제이지 이런 행위로 근본적인 죄의 뿌리를 없이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이 그가 무지 했으며, 환경이 좋지 않았으며, 가정환경이나, 주위의 환경 때문에 그의 심리 상태가 좋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생각이 근본부터 악하므로 죄를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그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 죄를 지었으므로 그 죄에 대한 다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모르고 죄를 지었으니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린애가 독약을 독약인 줄 모르고 먹으면 죽지 않습니까? 모르고 먹어도 독약을 먹었으면 죽는 법입니다. 모르고 죄를 지어도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는 그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죄를 짓는다고 해서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죄를 짓는 그 순간에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나님과의 관계가 순간적으로 어려워진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거나 외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의 삶에 있어 죄를 짓지 아니 하려는 노력은 하루 하루 매순간 순간 현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갖는 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와 함께 하는 충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지은 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죄를 범할 때 양이나 소를 번제물로 드려서 자기가 지은 죄를 속죄 받았습니다. 그 속죄가 행해지는 곳이 성막이라고 합니다. 그 성막 안에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 속죄소가 있습니다. 여기 속죄소라는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속죄소를 ‘시은좌’라고도 합니다. 즉 죄를 속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은혜를 베푸는 자리입니다. 속죄소라는 뜻은 ‘덮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덮는다는 뜻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보면 히9:1-5절을 봅니다.
여기 보면 지성소 안에 언약궤가 있고, 그 언약궤 위에 속죄소가 있습니다. 언약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적인 돌비가 들어 있습니다. 그 셋을 담은 언약궤 위에 속죄소가 있고 그 위에 그룹들이 날개로 속죄소를 덮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셋,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의 돌비가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중요한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만나항아리를 생각해 보면 출16절에 만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주셔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신명기9:3,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가 보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 신약시대로 말하자면 먹을 것이 없어서 예수님을 못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셔서 그들을 배부르게 하시자 그들이 잘 믿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나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민수기 16,17잘을 보면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민수기16장에 그들이 모세의 지도권에 대하여 반발을 하고 나오는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세와 아론에게 자기네들도 제사를 지낼 자격이 있다고 우기고 향로를 들고 나왔다가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모세와 아론에게 항의하자 지진이 나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17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거스리지 말라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 각 족장에게 그들의 지팡이를 성막에 갖다 놓으라고 하시고 다음날 아론의 지팡이만 움이 돋고 순이 나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그 지팡이를 언약궤 안에 놓으라고 하신 겁니다. 이 싹난 지팡이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는 표입니다.
셋째는 십계명 돌 판입니다. 이 돌비에는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십계명을 모세가 산에서 받을 때입니다. 제일계명부터 제십계명까지 모두 인간의 범죄를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세 가지 물건은 다 인간의 죄를 지적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속죄소가 덮고 있으며 그 속죄소를 그룹들이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속죄소 위에 그룹 사이에 임재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속죄소 밑에 들어 있는 세 가지 물건으로 인간의 죄뿐입니다. 그걸 피로 덮어서 하나님이 보시지 않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죄를 그냥 지나치시지 않으십니다. 철저히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그 죄를 처리하십니다.
바로 그 속죄소에 피를 뿌렸는데 양의 피 이겠습니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죄값을 요구하시고 우리가 죄인이므로 스스로 죄를 처리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친히 오서서 인간이 되시고 죽으셔서 그 피로 우리 죄를 속죄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고 피 흘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다 지시고, 그 죄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값을 치리시기 위하여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라는 문제를 가장 중요한 근거로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국 죄에 대하여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며, 매일의 생활에서 얼마만큼 죄와의 투쟁에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느냐로 결론되어 집니다. 결코 죄라는 걸 간과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 앞에 우리의 죄에 대한 처절한 고민과 개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질문의 시간
1, 불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죄에 대한 생각을 말해 보십시오.
2, 언약궤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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